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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주이야기

[대우주]우주에 휴게소를 짓는다면…바로 여기, 라그랑주 포인트 [Science]

by 맑음:D 2021. 6. 18.

우주에 휴게소를 짓는다면…바로 여기, 라그랑주 포인트 

영화 `승리호`에서 봤던 라그랑주 포인트, 실제로 있네

 

출처: 매일경제(2021.05.22 / 이새봄기자)

우주공간에서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는 우주 청소부들이 고철이 된 로켓 잔해물을 보며 한마디를 남긴다. "어, 라그랑주 점에서 온 것치고는 진짜 멀쩡하네."

올해 개봉한 영화 '승리호' 속의 대사다.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라그랑주 점(라그랑주 포인트)'에는 우주를 표류하는 쓰레기들이 가득 모여 있다. 우주 쓰레기가 넘치지 않도록, 화성에 인류가 살 수 있는 인공도시를 만든 기업 UTS는 우주 쓰레기가 모여 있는 이곳에 쓰레기를 분해하는 '나노로봇'을 살포한다.

나노로봇은 영화 속 허구지만, 라그랑주 포인트는 우주에 실존한다. 흔히 지구를 벗어난 우주공간은 무중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우주는 무중력상태가 아니다. 다른 별이나 행성의 중력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우주에 떠 있는 물체는 계속 움직인다. 우주에서 다른 천체의 영향을 완전히 지우기는 어렵기 때문에 두 개 이상의 천체에서 받는 인력이 교묘하게 상쇄되는 위치가 라그랑주 점이다. 사실상 가장 무중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 지점을 처음 발견한 수학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1736~1813)의 이름을 따 라그랑주 포인트라고 부른다. 연료를 소모하지 않고도 한자리에 정지할 수 있기 때문에 우주 휴게소라는 별명도 가진다. 지구와 달, 지구와 태양, 태양과 목성 등 각각의 천체 사이에는 각각의 라그랑주 포인트가 존재한다. 두 천체 간의 라그랑주 포인트는 총 5개로, 라그랑주 포인트의 앞글자 L에 번호를 붙여 L1~L5라고 부른다. 지구와 태양 간의 라그랑주 포인트는 지구(earth)의 앞글자를 붙여 EL, 지구와 달 간의 라그랑주 포인트는 달(lunar)의 앞글자를 더해 LL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지구와 태양 간에 위치한 라그랑주 포인트 중에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L1(EL1) 지점은 지구에서 태양 방향으로 약 150만㎞ 떨어져 있다. 지구와 달 사이 거리(38만㎞)보다 약 4배 정도 멀다.

영화에서는 라그랑주 포인트에 우주 쓰레기가 가득 모여 있지만 실제 상황은 이와 다르다. 인간이 만들어낸 우주 쓰레기는 위성 궤도 주변에 모여 있다. 임무를 마치고 수명을 다한 위성들이 지구와의 교신을 멈추고도 계속 궤도를 돌고 있기 때문이다. 정지궤도 위성의 고도는 3만6000㎞이며 정지궤도보다 조금 더 먼 거리에 있는 타원형 고궤도의 고도는 가장 지구에서 먼 지점일 때 5만㎞ 정도다.

지구·달 간 라그랑주 포인트 중에 지구와 가장 가까운 L1(LL1) 지점만 해도 지구에서 달 방향으로 약 32만㎞ 떨어져 있다. 수명이 다한 퇴역 위성들이 궤도를 벗어나 라그랑주 포인트까지 이동하기는 어렵다. 승리호 감독인 조성희 감독 역시 우주 쓰레기가 모여 있는 라그랑주 포인트는 '영화적 설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실의 라그랑주 포인트는 쓰레기 정체 구간이 아니라, 중요한 우주 시설을 설치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다. 특히 우주정거장을 설치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장소로 평가받는다. 우주정거장이란 우주선을 보다 먼 우주(심우주)로 날려보내기 위한 휴게소이자 정거장이다. 현재도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있지만 실제 이러한 기능을 하고 있지는 않다. 지구 400㎞ 상공을 돌고 있는 ISS는 우주인들이 머물고 실험을 하는 장소로 주로 활용되며 우주선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역할은 없다. 또한 고도 유지와 쓰레기 회피, 고도 조정을 위해 매년 평균 7000㎏의 연료를 소모한다. 지구와 달 사이에 있는 라그랑주 포인트에 우주정거장이 설치될 경우 고도 조정과 유지를 위해 연료를 소모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유지 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된다.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개발을 계획 중인 달 우주 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의 궤도'가 지구·달 간 라그랑주 포인트 중 LL1 지점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라그랑주 포인트에 위치한 위성들은 또한 지구의 공전주기와 동일하게 태양을 돌기 때문에 지구 한 지점의 기상만 관측할 수 있는 정지궤도 위성과 달리 지구 자전에 따른 지구 전체의 기상 관측이 가능하다. 언제나 지구를 등진 채 태양을 바라볼 수 있어 관측 위성이 자리하는 데 최적의 위치다. 2015년 NASA가 쏘아올린 심우주 기상관측위성 DSCOVR는 EL1에서 같은 해 8월 지구·태양 간 지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달 뒷면'의 모습을 찍어 지구로 보냈다. DSCOVR는 하루에 6번씩 태양의 움직임을 촬영해 지구에 전파 교란을 야기하는 흑점 폭발을 살펴본다.이보다 앞선 1995년 유럽이 발사한 태양관측위성 소호(SOHO)도 EL1에 자리 잡고 있다.


라그랑주 포인트는 내년 8월 한국을 떠날 한국의 달 궤도선(KPLO)이 달로 향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KPLO는 달로 바로 향하는 대신 태양을 향해 발사된다. 스페이스X의 팰컨9 발사체를 이용해 지구 중력을 벗어나는 KPLO는 태양의 중력 영향으로 궤도 에너지가 증가하다가 지구·태양 간의 중력이 서로 상쇄되는 라그랑주 포인트(EL1)에 도달한다. 무중력인 라그랑주 지점에서는 약한 힘으로도 궤적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고, 이 지점 주변에서 태양의 힘을 잘 이용하면 궤적을 크게 변화시켜 달에 도착할 때 속력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EL1에 도착한 KPLO에 약간의 추력을 줘 라그랑주 포인트에서 살짝 벗어나게 하고, 태양의 섭동력(궤도에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이용해 달 쪽으로 방향을 튼다. 달과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지구 쪽으로 되돌아오는 KPLO는 바로 달의 궤도로 진입하지 않고 달과 지구 사이에 있는 지구·달 라그랑주 포인트(LL2) 주변을 비행한다. 달이 지구의 남쪽에 있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라그랑주 포인트 안으로 들어가 달과 함께 이동한다. 이후 태양과 지구의 중력을 이용해 가며 달 주변을 매우 느리게 이동하다가 달이 지구의 북쪽으로 왔을 때 달 궤도에 포획된다. 보통 달·소행성 등 목표로 하는 천체에 궤도선이 진입하기 위해서는 감속을 위한 에너지가 필요한데, 라그랑주 포인트를 이용하면 에너지를 한번 더 아낄 수 있다. 달탐사사업단장을 역임한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은 "지구에서 어떤 행성으로 갈 때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로켓추진'이지만 연료를 최소화하면서 중력 평형점을 이용해 계산된 길을 잘 따라간다면 적은 연료를 사용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추진체를 활용해 달로 직접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일이지만 이 방법을 사용하면 달로 향하는 여정이 130일 정도로 늘어난다. 하지만 연료를 아낀 만큼 더 오랫동안 임무 수행을 할 수 있다. 항우연 측은 궤적 변경을 통해 임무 수행을 약 8개월 더 오래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명환춘 항공우주연구원 박사는 "아직 구체화된 계획은 없지만 중국과 인도의 경우에는 달궤도선 임무를 종료하고 지구·태양 간 L1 지점에서 추가 임무를 수행한 적 있다"며 "연료의 문제가 없다면 우리나라도 향후 달궤도선 임무 연장선상에서 EL1 지점으로의 추가 임무를 고려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