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과학] 열매는 씨앗을 싣고…식물 영토 넓히네
매일경제: 2020.10.21
가을 산 바닥에 떨어진 햇밤은 산속 청설모나 다람쥐의 밥이 된다. 지방을 축적하기에 몸이 작은 이들은 겨울잠을 준비하면서도 충분한 식량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열심히 숨겨놓고 종종 숨긴 곳을 잊어버려 모은 열매를 찾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묻혀 있다가 싹을 틔우면 식물로서는 성공일 게다. 햇밤을 까봐도 씨는 없다. 가끔 있는 거라고는 작은 구멍에 몸을 숨기고 있는 애벌레뿐인데, 다람쥐에게 잊혀 싹을 틔우는 밤, 도대체 밤은 열매일까, 씨앗일까?
Q. 열매와 씨앗은 어떻게 다른가.
A. 새로운 식물로 자라는 것은 씨앗이고, 열매는 씨앗을 포함해 과육과 껍질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다. 열매는 피자식물(꽃이 피는 종자식물 중 속씨식물을 의미)이 수정한 후 씨방이 자라서 되는 것으로 열매 껍질은 씨방이 발달한 것이다. 대개는 열매 속에 종자가 들어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씨앗이라고 한다. 씨앗의 배는 잎, 줄기, 뿌리가 될 부분으로 싹이 터서 자라면 새로운 식물이 되고 그 주변을 싸고 있는 배젖은 배가 싹터서 자랄 때까지 사용할 수 있는 영양분이 저장돼 있다. 밤은 열매이면서 씨앗이다. 자체가 나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밤은 땅속에서 발아한 뒤에도 한동안 형태를 유지하며 발아한 싹에 영양을 공급한다. 이것이 밤이 가시가 달린 껍질에 싸여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씨앗이 먹히면 새로운 나무로 자랄 수 없는 만큼 가시로 씨를 보호하는 것이다.
Q. 식물이 열매를 맺는 이유는.
A. 동물을 이용해 번식하기 위한 전략이다. 땅에 뿌리를 고정하고 살아야 하는 식물들은 적합한 계절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을 물리적으로 `멀리` 퍼트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정된 땅에서 영양분과 빛을 두고 후손과 경쟁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식물들은 새나 동물에게 눈에 띄는 아름다운 색과 향을 열매를 위해 준비한다. 열매의 달고 맛있는 과육을 동물에게 제공해 그 과일을 먹은 값으로 동물이 씨앗을 퍼트리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열매는 씨앗이 준비된 정도에 따라 다른 색, 향, 맛을 준비한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시기에는 동물을 회피하게 하는데 그게 바로 잎과 구분이 잘 가지 않게 하는 초록 열매와 쓰거나 떫은맛을 내는 성분을 갖게 하는 것이다. 씨앗이 싹을 틔울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땅에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잘 익은 열매에 좋은 향과 맛을 갖게 한다. 이는 식물이 자기 자신이 아닌 열매를 먹는 다른 동물을 위해 만든 물질들 덕분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색소와 대사물질이 포함돼 있는데 열매 속 이런 대사물질은 2차 산물로 식물의 생리 기능에 직접 기여하지 않는 성분이다. 여기에는 또 다른 전략인 `멀리 가서 배설물로 나오게 하기 위한` 물질도 포함한다. 열매에 들어가 있는 글리코알칼로이드는 변비를 일으켜 멀리 이동한 뒤 배설을 통해 씨앗을 퍼트리게 한다. 또 씨앗이 소화되기 전에 배출되도록 설사를 일으키는 성분(쿠쿠르비타신)을 만들기도 한다.
Q. 씨앗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A. 또 다른 씨앗 생존 전략은 씨앗에 동물에게 좋지 않은 성분을 높이는 것이다. 렉틴, 피트산, 옥살산과 같은 항영양소 성분이 그것이다(사실 대부분의 과육(열매에서 동물에 의해 소화되는 부분)을 제외한 모든 식물 부위에 이런 성분들이 들어가 있다). 옥살산염은 미네랄 흡수를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과다하게 섭취하면 세포와 미토콘드리아를 손상시키기도 한다. 피트산은 미네랄 흡수를 방해해 미네랄 결핍을 일으키며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소화 효소 작용을 억제하는 소화 저해 기능을 한다. 까마득한 시간 동안 자기 나름대로 방어기제를 갖춰온 것이다. 말 그대로 화학전을 이용한 번식체계다. 물론 동물은 특수한 소화기관(긴 소화기관과 맹장, 인간은 다양한 조리 방식)을 통해 이를 극복해오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Q. 땅으로 떨어진 씨앗은 어떻게 발아하나.
A. 그렇다면 땅에 떨어진 씨앗은 어디에서든 싹을 틔울 수 있을까?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 씨앗의 발아 조건으로 물, 온도, 빛을 배웠다. 그렇다면 씨앗은 그 조건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씨앗은 발아 단계 전 종자 휴면이라고 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씨앗이 발아하기 적합한 환경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적당하지 않은 환경에서의 발아는 결국 번식 실패를 의미한다. 벼가 이삭에 매달린 상태에서 일찍 발아하면(수발아 현상) 벼의 전략도 실패이며 곡물 생산에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런 불리한 환경에서의 발아를 조절하는 단백질이 식물 호르몬 아브시스산(Abscisic acid)이다. 이 호르몬은 어린 식물이 버틸 수 없는 환경에서 일찍 발아하지 않도록 종자의 휴면 상태를 유지시킨다. 배젖의 세포막에 위치한 수용체가 호르몬의 분비와 수용에 관여하며 종자의 휴면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동물의 섭식과 배설 과정으로 씨앗의 발아율이 높아지기도 하는데,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연구에 따르면 산양의 배설물에서 나온 헛개나무 씨앗은 산양의 되새김질 과정으로 씨앗이 얇아지고, 배설물에 포함된 미생물과 수분 등을 이용해 발아가 촉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아담과 하와가 먹은 `사과`는 유혹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 따지고 보니 그것이 바로 모든 열매의 본질이다. 그리고 식물 번식을 위한 영양소 가득한 씨앗은 인류에게 농경과 정착을 시작하며 문화를 발전시키게 한 문명의 젖줄이었다.
[원은지 한양대 해양·대기과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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